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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경제학의 학파

by 칠복코니 2024. 1. 23.

1. 고전학파

   고전학파, 스미스 경제학이라 불리는 이 학파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중반에 영국에서 유행하였습니다. 애덤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르도, 존 스튜어트 밀, 토머스 멜더스 등의 학자가 이에 속합니다. 

 

 

 1776년 애덤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하며 시작되었다고 여겨지는 고전학파는 애덤스미스가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으로 비유되는 자율적인 생산과 교환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시장경제이론을 이끌었습니다. <국부론>에서 부는 국민소득에 따라 결정되며 국민소득은 국민들의 노동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데이비드 리카르도는 비교우위 이론으로 유명합니다. 국제무역이 생활의 질을 향상시켜줄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국제적인 분업이 이루어진다면 자원들을 더 효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였습니다. 후에 이러한 이론들은 노동가치 이론과 충돌하는 등 딜레마에 봉착하기도 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리카르도의 이론을 이어가며 딜레마들에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수요와 공급으로 이루어지는 가격함수를 말하였고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시장의 균형이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경제정책에 대하여 고전학파는 시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의 입장이었고 국가는 공동선을 제공하는 것이 그 역할로 보았습니다. 독점의 페해를 경고하며 경쟁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국제무역 역시 보호주의보다는 자유무역을 주장하였습니다. 국제무역측면에서는 모든 무역대상국에 결과적인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보았습니다.

 

 

2. 신고전학파

 

 고전학파를 잇는 학파로 정부의 주도와 개입을 주장하는 케인즈학파에 대응하는 입장입니다. 신고전학파 학자로는 카를 멩거, 존 클라크 베이츠, 앨프리드 마셜 등이 있습니다. 1890년에 출간된 마셜의 <경제학 원리>는 현대 미시경제학을 집대성하는 공로를 인정받는 책입니다.

 

 신고전학파의 주장은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 기본개념으로 개인은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사람들은 옳은 정보를 가지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가정했습니다. 그렇기에 시장이 자율적으로 움직일 때 가격은 자율적이고 원활하고 결정되며 이로 인해 생산과 소비도 조화를 이루고 경제도 성장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시장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는 인위적인 개념을 배척하며 작은 정부의 역할에 맞는 정책을 옹호하였습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고전학파의 주장은 대공황이 닥친 1930년대에 강력한 국가의 개입과 주도를 주장하는 케인즈학파에 밀려났다가 1950년대에 다시 힘을 얻으며 성장이론을 발전시켜나가게 됩니다. 

 

 

 

  3. 케인즈학파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주장하는 것을 따르는 학파입니다. 경제 내 총 지출을 의미하는 총 수요는 불안정하고 변동성이 많으므로 거시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수요가 과도하게 낮아지는 경우에는 경기가 침체되고 수요가 과도하게 높아질 때에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는 내용으로 이러한 불안정이 발생했을 때 경제를 안정화하려면 국가가 개입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케인즈이론이 등장할 즈음에는 시장은 자율적으로 균형을 찾는다는 것이 경제학의 주류이론이었습니다. 소비자는 언제나 생산자가 제공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에 재화와 서비스는 적절한 가격만 이루어지면 모두 소비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시기가 도래하자 치솟는 실업률과 이것의 지속되는 상황은 많은 것을 바꾸었습니다. 케인즈는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고용의 완전성에 의문을 던지며 정부가 정책적인 개입과 지출로 시장을 주도하며 부족한 구매력을 보완해야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케인즈이론을 따른 국가 정책으로는 대표적으로 대공황시기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도한 '뉴딜'정책이 있습니다. 대공황을 타파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나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표방하던 과거에서 국가 개입하고 지출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위해 변화하는 시작이었으며 이 때 수립된 정책들 중 일부는 보완 발전되며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대공황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크게 주목받으며 발전한 케인즈학파는 1970년대에 국제화시기가 도래하며 국가와 국가의 경제적인 상호의존성이 커지게 되고 물가상승과 실업률증가가 함께 찾아오는 스태그플래이션이 등장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며 다시 신고전주의간은 자유주의 경제학파들에게 주류를 내어주게 됩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하는 케인즈학파의 이론에도 정부는 항상 가장 합리적으로 공정하고 옳은 판단을 해야하고 항상 이익을 가져다주는 정책을 수립할 수 있어야한다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 대공황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전 세계에 걸쳐 영향을 끼친 세계적 경제 불황을 말합니다. 1929년 10월 24일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증시가 폭락하는 '검은 목요일'을 기점으로 촉발하였습니다. 실업률은 치솟기 시작했고 도산하는 회사들이 줄을 이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경제위기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고 직장 자체가 파산하는 경우도 많아 실업상승률이 가파르게 치솟았으며 직장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등 소득의 감소로 인해 구매력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구매할 능력을 잃으면서 농부들도 돈을 벌 수 없었습니다.

 

 주가가 떨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은행에 저축해둔 돈을 인출하려고 달려갔고 급격한 대량인출사태로 인해 도산하는 은행들도 생겨났습니다.

 

 경제성장과 호황의 시기에 발달한 건축과 자동차 등 산업 전반도 영향을 받아 혁신이 멈추고 재고를 떠안게 되는 등 큰 손해를 입었습니다.

 

 이러한 불황은 세계적으로도 영향을 끼쳐 유럽과 북미지역등 여러 나라들도 비슷한 수준의 힘든시기를 보냈습니다.

 

4. 통화주의

 

 통화주의는 거시적관점의 경제변화에 맞추어 화폐의 공급량을 중요하게 여기며 화폐를 관장하는 중앙은행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화폐에 대한 개입을 주장하는 경제학파입니다.

 

 

 

 통화량을 조절하여 단기적인 경제성장이나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주장합니다. 케인즈학파의 총수요에 대한 접근과는 반대가 됩니다. 밀턴 프리드먼의 '인플레이션은 언제든 어떠한 경우라도 화폐적인 현상이다.'라는 발언이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은 규칙에 맞추어 시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확한 시기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정책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로 인해 자연스러운 흐름에 위험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폐수량이론을 주장하며 1970년대에 각광을 받았지만 이후 실제적인 효과에서 실망감을 안기며 주춤하였습니다.

 

* 화폐수량이론 

   Mv = PY

 M - 화폐 공급량 , v - 화폐 유통속도, P - 가격수준, Y - 총생산량

 

 화폐의 유통속도와 총생산량이 일정할 때 화폐공급을 조절하면 가격수준을 움직일 수 있다, 다시 말해 물가를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5. 새 케인즈학파

 

 케인즈 거시경제학을 보완하며 발전한 학파입니다. 기요타키 노부히로, 그레고리 맨큐, 폴 크루그먼 등의 학자가 이에 속해있다고 봅니다.

 

 새 케인즈학파는 거시적으로 가계와 기업은 합리적인 기대로 대응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면서 다양한 측면의 시장의 실패 또한 가정합니다. 이러한 가정들 속에서 정부 측의 정책과 중앙은행의 통화관련 정책을 모두 활용한 경제의 거시적 안정화가 더 효율적이고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합니다.

 

 통화주의에서 주장한 화페수량이론에서 가격(물가)를 움직여볼 수 있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가격은 쉽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화폐공급에 대한 조절이 총생산량을 움직일 수 있고 이것이 실업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통화에 대한 정책은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안정화를 위한 정책을 사용할 것을 권하였습니다.